| "우리는 슬픔과 좌절을 진화하죠" | 사무국 | 2008-01-16 |
 |
| 지난 11일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현장에서 이천 여성의용소방대원 소속 회원이 한 소방관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
화재현장의 천사부대… '이천 여성 의용소방대'
30~50대 주부회원 150명, 불 나자마자 현장 출동
슬프고 지친 유가족·소방대원에게 '설렁탕 봉사'
1주일간 4000인분 식사 제공… 재기 의욕 북돋아
"고생하시는데 따끈한 국 한 그릇 먹고 하세요.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지난 7일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창고 화재 현장. 비극적인 사고현장에 소방관들 만큼이나 일찍 달려왔고, 사고 일주일이 지난 요즘도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천 여성 의용소방대원들. 30~50대 주부로 이뤄진 이들은 화재 현장 바로 옆에 비닐 천막을 치고 소방관들과 유가족들에게 식사와 따뜻한 차를 대접했다. 지난 일주일간 이들이 차린 식사는 모두 4000인분에 이른다.
사고가 난 지 나흘이 지난 11일에도 이천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쓰는 천막은 밥 냄새가 가득했다. 회원들은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회용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을 담아 소방관들에게 건네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고 현장에서 나와 검댕이를 뒤집어 쓴 소방관들의 얼굴이 따뜻한 음식을 받아 들자 금세 환하게 펴졌다.
한 소방관은 "화재 현장은 늘 긴장과 피로의 연속인데 이렇게 따끈한 국 한 그릇 먹고 나면 힘이 난다"며 "저분들이야말로 이곳(이천 화재현장)에서 가장 소중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어디든 달려 가는 열성파 주부들"
이천여성의용소방대 김승자(56) 대장은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왔다"며 "처음엔 검은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천여성의용소방대원 회원들은 150여명. 대부분은 평범한 주부들이다. 하지만 이번 화재 때는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였다. 휴대폰과 집전화로 연락을 받은 회원들은 불이 난 지 불과 20분 만에 사고 현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회원들은 사고 본부 옆에 간이 천막을 짓고 밥을 짓고 차를 끓여 소방대원들과 응급구조요원들에게 건넸다. 하루 평균 70명의 회원들이 화재 현장을 지켰다.
"화재 첫날에는 100명 넘는 회원들이 나와서 새벽까지 봉사했어요. 다들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 밥 챙겨줘야 할 주부들인데, 직무유기를 한 셈이죠. 호호." 그래도 가족들이 엄마의 봉사 활동에 익숙해서 '알아서' 저녁을 해결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김 대장은 전했다.
이천여성의용소방대의 자원 봉사활동은 이천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복날이면 이천 시내 독거노인들의 집을 돌며 삼계탕 재료를 전달하고 이불을 빨아주고, 김장철에는 손맛을 발휘해 저소득층에게 줄 김장을 수백 포기씩 해냈다. 뿐만 아니다. 이천도자기 축제 등 지역 행사나 중증장애인을 위한 자원 봉사활동에는 빠지지 않고 달려간다.
◆"봉사활동은 '나부터'를 실천하는 운동"
김승자 대장은 일주일 내내 이번 화재 현장을 지키면서 "안타깝고 슬펐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의 원인이 된 안전불감증도 결국 '나 하나쯤이야, 우리는 괜찮겠지'하는 생각 때문에 터진 거잖아요. 사람들이 '나부터'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겠죠."
보험설계사 출신으로 1990년부터 의용소방대로 활동해온 김 대장은 자원봉사 활동은 '나부터'를 실천하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처음 자원봉사를 할 때는 '힘들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계속 자원봉사를 하다 보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요. '나부터' 나서서 이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처음에는 도움을 받는 상대방이 바뀌고 우리 동네가 바뀌고 결국 내 삶도 바뀌게 되죠."
김 대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일손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슬픈 일(냉동창고 화재)이지만 서로 다독여가며 이겼으면 좋겠어요. 그게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이천을 사랑하는 일이겠죠."
조선일보
 |
1 